인쇄된 디스크 드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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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된 디스크 드라이브

책, 개인

아이폰이 너무 무겁게 느껴져서, 그 무게를 덜기로 했다.

갤러리에는 4580장의 사진과 395개의 비디오가 있다. 고등학교까지 썼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는 N클라우드에 백업이 되어있으니, 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18년 이후의 기록이다. 비디오는 책에 들어갈 수 없으니—구겨 넣더라도 많은 걸 잃게 될테니—사진이라도 정리해보기로 했다.

책의 판형은 실제 3.5인치 하드디스크의 규격(101.6mm × 25.4mm × 146mm)을 최대한 따라간 105mm × 20.6mm × 146mm이 되었다. 오히려 책장보다 데스크탑 안이 제자리일지도 모른다.

책은 맥북에서 갤러리를 열고, 이를 폴더에 옮긴 뒤, 하나씩 그리드에 끼워넣는 절차의 반복으로 제작되었다. 제작 과정에서 2018년부터 촬영된 모든 사진에 노출되었다. 촬영금지라고 써있는 은행의 보안카드, 일정한 기간을 두고 여러번 촬영된 주민등록증, 가족 모두가 활짝 웃고있는 사진, 볼링장에서 이상한 자세와 표정으로 볼링을 치고있는 친구들, 가끔 고양이와 구름. 떠오른 표현은 주마등 밖에 없었지만 주마등의 결정적인 조건인 위기 상황과는 거리가 있다. 천천히 마우스 또는 트랙패드를 통해 한장씩 사진을 채워나갔다.

표지는 문켄폴라 200g을 사용하였다. 별색은 사용하지 않고 대신, 흰 영역을 조금 뿌옇게 만들어서 상대적으로 주황색이 돋보이도록 했다.

내지로는 스노우 120g을 사용했다. 아트지와 고민하다가, 스노우지의 해당 평량이, 원하는 책등의 두께가 되어서 그렇게 정했다.

내지 안쪽의 여백은 25mm로 여유롭게 설정했다. 책이 작고 두꺼우며, 내지또한 두께가 있는 편이어서 충분히 여유를 두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사진은 꽉 들어차있지 않고 충분한 여백을 가지고 있으며, 그러기 위해 사진은 엽서정도의 크기가 되었다. 맨처음엔 사진을 크게 넣을까 고민했지만, 나중에 다시 보기 위해서 <직접> 찍은 사진들은 클 필요가 없다. 작은 크기여도 분위기 만으로 당시의 기억을 되살리며 제 역할을 다하기에는 충분했다.

책은 한 권만 인쇄되어서, 데스크탑은 아니고 그 옆에 있는 책장에서 보관중이다. 데스크탑을 수시로 열기에는 버거우니. 총 6.24GB, 2144장의 사진이 들어갔다. 조금, 아주 조금 가벼워진 것 같다.